우리나라는 왜 구글맵 길찾기가 안 될까: 열여덟 해 지도 반출 다툼의 전말
구글맵에서 자동차 길을 물어볼 수 없는 나라는 손에 꼽히고, 무인도와 군사기지를 빼면 대한민국 하나가 남습니다. 북한에서는 됩니다. 열여덟 해를 끌어온 이 다툼은 지난겨울 결말이 났는데도 아직 길찾기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 잘 쓰던 앱이 돌아오면 멈춥니다
여행지에서는 대개 구글맵을 켭니다. 도쿄에서도 방콕에서도 파리에서도, 낯선 골목 한가운데서 화면이 시키는 대로 걷다 보면 목적지 앞에 서 있습니다. 처음 가 본 도시에서 버스 몇 번을 타야 하는지까지 알려 주니 따로 준비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인천공항에 내려 같은 앱을 켜면 그 기능이 없어집니다. 지도 지도는 그대로 보이고 가게 이름도 나오고 별점도 달려 있는데, 길찾기를 누르면 자동차와 도보 경로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걸 잘 모르고 삽니다. 국내에서는 애초에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을 켜니까요. 불편을 느끼는 쪽은 한국에 온 외국인입니다. 공항 도착장에서 폰을 들고 한참 씨름하다가 주변 사람에게 길을 묻는 장면이 매일 벌어집니다.
그 사람들은 대개 자기 폰이 고장 난 줄 압니다. 로밍이 잘못됐거나 앱을 다시 깔아야 하는 줄 알고 공항 와이파이에 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합니다. 폰은 멀쩡합니다.
이 이야기는 스무 해 가까이 이어진 다툼의 결과이고, 얼마 전 결말이 났는데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작은 구글이 자기 문서에 조용히 적어 둔 표 한 장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글이 자기 문서에 적어 둔 명단
구글은 개발자용 페이지에 나라별로 지도 기능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표로 공개합니다. 자동차 길찾기가 되는가, 걸어가는 길을 알려 주는가, 실시간 교통이 보이는가 같은 항목이 나라 이름 옆에 칸칸이 표시돼 있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자동차 길찾기 칸에 표시가 들어가 있습니다. 표시가 없는 곳을 전부 세어 봐도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 명단에 누가 있는가
표시가 빠진 곳들을 하나씩 열어 보면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남극 근처의 무인도, 인도양 한가운데의 군사기지, 남대서양에 떠 있는 작은 섬 몇 곳입니다. 스페인령 두 곳이 끼어 있기는 한데 그쪽은 본국 이름으로 길찾기가 되니 사정이 다릅니다.
무인도와 군사기지를 걷어내면 하나가 남습니다. 대한민국입니다.
북한은 됩니다
이 대목이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사람을 멈춰 세웁니다. 같은 표에서 북한은 자동차 길찾기도 되고 걸어가는 길도 나옵니다. 이란도 되고 시리아도 되고 쿠바도 되고 아프가니스탄도 됩니다.
그러니 제재나 분쟁 때문이라는 설명은 맞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게 잘 닦인 도로망을 가진 나라가, 지도 앱에서는 길을 알려 주지 않는 쪽에 혼자 서 있습니다. 이유는 바깥에 있지 않습니다. 안에 있습니다.

지도 한 장을 두고 벌어진 일
우리나라는 정밀한 지도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근거는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입니다. 정전 상태가 이어지는 나라에서 군사시설의 위치와 모양이 지도 그대로 드러나는 지도를 해외 서버에 올려 두는 일을 위험하게 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지도가 막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덜 정밀한 지도는 허가 없이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지도로는 골목까지 안내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지도
1:5,000 과 1:25,000
지도에는 축척이 있습니다. 종이 위의 1센티미터가 실제로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구글이 정부에 달라고 한 것은 1:5,000 짜리 국가기본도이고, 허가 없이 쓸 수 있는 것은 1:25,000 짜리입니다.
구글은 1:25,000 으로는 부족하다고 밝혀 왔습니다. 그 축척에서는 1센티미터가 250미터를 담게 되는데, 그 정도 눈금으로는 복잡한 도심에서 어느 골목으로 꺾으라고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도
정부 쪽 사정도 가볍지 않습니다. 그 1:5,000 지도는 나라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었고 들어간 돈이 1조 원을 넘습니다. 게다가 그 지도를 구글이 가진 위성사진 위에 겹치면, 따로 표시하지 않아도 가려 둔 시설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다툼은 지도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굳어졌고, 그 상태로 열여덟 해가 흘렀습니다.



세 번의 신청, 세 번의 다른 결말
구글이 처음 지도를 달라고 한 것은 스마트폰이 나오기도 전입니다. 그때는 안보를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이 신청은 정부 안에 따로 마련된 자리에서 심의합니다. 국토지리정보원이 주재하고 국방부와 외교부,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원 같은 부처가 함께 앉는 협의체입니다. 지도를 해외로 내보내겠다는 요청이 들어오면 여기서 판단합니다.
해외 기업의 요청이 아주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협의체가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 뒤로 들어온 요청을 다 세어도 열 건 남짓입니다. 그중 가장 여러 번 문을 두드린 곳이 구글입니다.
두 번째 신청에서 달라진 것
두 번째 신청 때 협의체는 문을 아주 닫지 않았습니다.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국내 보안시설을 지도와 위성사진에서 가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구글은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서비스 품질이었습니다. 전 세계 사용자가 보는 지도에 특정 나라만 뭉개진 자리가 생기는 것을 구글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협의체는 마지막 회의에서 반출을 불허했습니다.
이 장면을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뒤에 나오는 결말이 여기서 뒤집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바꾼 쪽은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신청서가 들어온 것은 한참 뒤의 일입니다. 이번에는 신청서에 적힌 태도가 달랐습니다.
구글은 정부가 요청하면 보안시설을 가리겠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서비스 품질을 이유로 거절했던 바로 그 조건입니다. 여기에 더해 정부와 이야기를 주고받을 임원급 담당자를 따로 두겠다고 했습니다.
협의체는 곧바로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봄에 한 번, 여름에 한 번, 늦가을에 한 번 회의를 열었는데 세 번 다 결론을 미뤘습니다. 안보만 보면 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통상 마찰이 걸려 있었고, 국내 지도 업체들이 받을 영향도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허가가 났습니다
결론이 난 것은 지난겨울입니다. 협의체는 보완 신청서를 검토한 뒤 조건부 허가를 의결했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 세 번 두드린 문이 마침내 열렸습니다.
정부가 물러선 것처럼 보이기 쉬운데, 자세히 보면 반대입니다. 협의체는 두 번째 신청 때와 같은 방향으로 조건을 걸었습니다. 달라진 쪽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구글입니다.
허가에 붙은 여섯 가지 조건
허가라고 해서 지도 파일을 통째로 건네준 것은 아닙니다. 협의체는 여섯 가지 조건을 함께 걸었고, 그 내용을 읽어 보면 왜 아직도 길찾기가 안 되는지 짐작이 갑니다.
먼저 전 세계에 보이는 구글 지도와 구글 어스에서 우리나라 영토의 위성사진과 항공사진은 보안처리를 거친 영상만 쓰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찍어 둔 사진과 거리 사진에도 군사·보안시설 가림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땅의 좌표 표시도 제한됩니다.
지도를 어디에서 가공하느냐
지도를 가공하는 작업은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국내 서버에서만 하도록 했습니다. 원본은 구글의 국내 협력업체가 국내 서버에서 가공하고, 정부가 검토해서 승인한 데이터만 밖으로 나갑니다.
여기에서 구글이 오래 해 온 주장과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구글은 전 세계에 흩어진 데이터센터의 계산 능력을 한꺼번에 써야 수십억 명의 요청을 감당할 수 있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 지도만은 국내 서버에 묶였습니다.
마지막 조건도 눈에 띕니다. 한국 지도 전담관이라는 자리를 만들어 국내에 상주시켜야 합니다. 군사시설이 새로 생기거나 바뀌면 정부가 연락할 상대는 서울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청와대가 21년 만에 흐려졌습니다
조건을 지키는 일은 눈에 보이게 시작됐습니다. 이번 달 초, 구글 지도와 구글 어스에서 우리나라의 주요 시설이 뿌옇게 바뀌었습니다.
청와대가 가려졌습니다. 지도 국가정보원도, 용산의 국방부와 합참 청사도 가려졌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과 성주의 사드 기지, 평택과 오산의 주한미군 기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군 비행장과 한미가 함께 쓰는 비행장도 흐려졌고, 군사분계선 바로 북쪽의 일부 지점까지 같이 가려졌습니다.
청와대가 구글 지도에서 가려진 것은 21년 만입니다. 그동안 위성사진으로 지붕 모양까지 보이던 자리입니다.
한국에서는 좌표도 사라졌습니다
같은 시기에 또 하나가 바뀌었습니다. 국내에서 구글 지도를 열면 지점의 좌표가 더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위도와 경도 숫자가 뜨던 자리가 비었습니다.
가림은 지도를 갱신하는 대로 조금씩 번져 갑니다. 지금 모든 시설이 다 가려진 것은 아닙니다. 흥미롭게도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공표되지 않았습니다. 구글도 정부도 개시일을 발표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화면을 보고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길찾기는 아직 없습니다
여기까지 오면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듭니다. 허가가 났고 가림도 시작됐으니 이제 구글맵으로 길을 찾을 수 있겠구나.
아직 아닙니다. 지금도 구글맵에서 자동차 경로와 도보 경로는 나오지 않습니다. 실시간 교통도 보이지 않고 제한속도도 뜨지 않습니다. 앞에서 본 구글의 공개 표에서 우리나라 칸은 아직 비어 있는 그대로입니다.
허가는 문을 여는 일이고, 그 문으로 지도를 옮겨 서비스를 다시 만드는 일은 별개입니다. 국내 협력업체의 서버에서 가공하는 체계를 갖추고 정부 승인 절차를 돌리고 나서야 기능이 켜집니다.
지금 보이는 지도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렇다면 길찾기도 안 되는데 지도는 어떻게 보이는 걸까요. 구글이 직접 밝힌 답이 있습니다. 지금 화면에 깔리는 바탕은 에스케이 티맵이 가진 1:5,000 지도입니다.
구글은 그 지도를 빌려 단순히 지도를 보여 주는 서비스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구글맵에서 보는 한국 지도는 국내 회사가 만든 지도이고, 구글은 그 위에 자기 가게 정보와 별점을 올려 두었던 셈입니다.

국내 업체는 되는데 왜 구글만 안 되나
이 대목에서 매번 같은 반박이 나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1:5,000 지도로 내비게이션을 만드는데 왜 구글만 못 쓰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구글도 같은 논리를 들어 왔습니다.
정부 쪽 논리는 지도를 쓰는 것과 지도를 국외로 내보내는 것이 다른 일이라는 데 있습니다. 국내 업체의 지도 데이터는 국내 서버에 있고, 문제가 생기면 국내법으로 다룰 수 있습니다. 해외 서버로 넘어간 지도에는 그 수단이 미치지 않습니다.
이 논쟁은 안보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국내 업계 쪽에서는 다른 걱정을 내놓습니다. 구글맵이 국내에서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국내 지도 시장에서 구글이 차지하는 자리가 빠르게 커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검색과 광고와 자율주행까지 이어지는 자리라 그렇습니다.
허가가 난 뒤 나온 반응도 둘로 나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외국인 여행객이 훨씬 편해지리라고 반겼고, 다른 쪽에서는 구글 의존이 깊어지는 것을 걱정했습니다. 어느 쪽 말도 아직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기능이 켜지지 않았으니까요.
그 사이에 다른 회사들이 줄을 섰습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자동차 회사까지 같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애플 지도는 왜 조금 다른가
같은 벽에 부딪힌 줄 알기 쉬운데, 애플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애플은 허가가 필요 없는 1:25,000 지도로 한국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폰의 지도 앱에서는 자동차 경로가 나옵니다. 다만 쓸 만한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받아 오지 못해서 모든 도로가 비어 있다고 보고 안내합니다. 퇴근 시간에 그 안내를 따라가면 어떻게 되는지는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
걸어가는 길은 아예 막혀 있습니다. 경로를 요청하면 이 지역에서는 쓸 수 없다는 안내가 뜹니다.
애플은 아직 신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구글의 허가가 난 뒤 반년이 지나도록 애플은 보완 신청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문이 열린 것을 보고도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아이폰을 쓰신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국내에서 길을 찾으실 때는 애플 지도 역시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언제 켜지나
구글이 잡아 둔 목표는 내년 1분기로 알려졌습니다. 그 무렵에 자동차와 도보 내비게이션을 열겠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붙여 장소를 추천하고 경로를 찾아 주는 기능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목표는 목표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미 여러 번 미뤄졌습니다. 허가 심의도 세 번 연기됐고, 가림 처리도 허가가 난 뒤 반년이 지나서야 눈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직접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구글이 공개하는 나라별 지원 표에서 우리나라 줄의 자동차 길찾기 칸에 표시가 들어가면 그때가 켜진 때입니다. 뉴스보다 그 표가 먼저 바뀝니다.
그 칸이 채워지면 우리나라는 이 이상한 명단에서 빠집니다. 남극의 무인도와 인도양의 군사기지와 나란히 서 있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한국에 오는 지인에게 무엇을 알려 줄까
국내에 사는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당장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어차피 네이버 지도나 카카오맵을 켜니까요. 정작 곤란한 쪽은 한국에 오는 친구와 동료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말은 오기 전에 앱을 받아 두라는 것입니다. 도착해서 받으려면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공항 와이파이로 앱 하나를 받는 동안 이미 피곤해집니다. 네이버 지도와 카카오맵의 차이와 영어 설정법은 따로 정리해 두었으니 그 글 주소를 보내 주시면 됩니다.
두 앱 다 영어로 바꿀 수 있고 한국 전화번호 없이도 씁니다. 둘 중 하나만 고르라면 장소 검색이 강한 쪽이 낫고, 택시와 실시간 교통까지 쓰려면 둘 다 받는 편이 편합니다. 그 밖에 한국에서 쓸 만한 앱은 한국 여행 앱 정리에 모아 두었습니다.
구글맵을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길찾기가 안 될 뿐이지 나머지는 그대로 됩니다. 가게를 찾고 영업시간을 보고 리뷰와 사진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저장해 두는 것도 됩니다.
실제로 많이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행 계획은 구글맵에 핀으로 모아 두고, 움직일 때만 국내 앱을 켜는 것입니다. 저장해 둔 가게 이름을 네이버 지도 검색창에 넣으면 대개 같은 곳이 나옵니다.
차를 빌릴 계획이라면 이 대목이 더 중요해집니다. 제주에서 렌터카를 빌릴 때 구글맵만 믿고 출발하면 첫 교차로에서 막힙니다. 렌터카에 달린 내비게이션은 대개 한국어로만 나오니, 폰에 국내 지도 앱을 깔아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리고 어떤 앱을 쓰든 지도는 데이터가 있어야 돌아갑니다. 한국에서 쓸 유심과 이심을 미리 골라 두라고 알려 주시면 도착 직후의 한 시간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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